지브리 스튜디오는 독특한 스토리텔링뿐 아니라 목소리 연기에서도 남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제작사입니다. 특히 성우 캐스팅에 있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유명 배우나 비전문가를 적극 기용하는 전략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브리의 성우 선정 과정과 그 배경,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지브리만의 특별한 연출 세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전문 성우보다 배우를 선호하는 이유
지브리 스튜디오의 성우 캐스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전문 성우'보다는 '배우 출신'을 주로 캐스팅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성우는 너무 연기적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원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은 톤 조절이 뛰어난 전문 성우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지브리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를 더 자주 활용하며, 이를 통해 ‘일상적인 대화’처럼 들리는 목소리 톤을 구현하려 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 역을 맡은 히이라기 루미는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연기 경험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수한 음성과 실제 아동의 어색한 발성이 오히려 극의 리얼리티를 높였습니다. 또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 역을 맡은 기무라 타쿠야는 배우로서 인지도가 높지만 성우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나른하면서도 부드러운 발성이 하울 캐릭터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브리의 이런 캐스팅 방식은 때로는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브리다운 감성’을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캐스팅 에피소드
지브리의 성우 캐스팅 과정에는 항상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관여합니다. 그는 단순히 목소리의 높낮이나 톤뿐 아니라, 배우의 성격, 말투, 심지어 인터뷰에서의 말버릇까지도 캐릭터와 어울리는지를 분석합니다. 실제로 성우 오디션보다는 감독이 직접 보고 고르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단순한 실력보다 ‘어울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두 자매의 목소리는 실제 자매가 연기했습니다. 사츠키 역의 히다카 노리코와 메이 역의 사카모토 치카는 리허설 과정에서 실제 자매처럼 대화하며 캐릭터 간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감독의 의도적인 캐스팅 선택이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아시타카 역에 캐스팅된 마츠다 요우스케는 당초 애니메이션 경험이 없었지만, 미야자키는 그의 진중한 말투가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캐스팅을 강행했습니다. 실제 녹음 현장에서는 많은 리테이크가 있었지만, 감독은 끝까지 그를 믿고 기다렸으며, 결과적으로 아시타카의 캐릭터는 그 어떤 전문 성우보다 진정성 있는 톤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미야자키 감독의 캐스팅 철학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빙판
지브리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더빙되어 상영되며, 한국어와 영어 더빙판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판과 비교해 보면, 지브리에서 의도한 '목소리의 리듬과 감정의 균형'은 원작 일본판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감독이 각 장면의 호흡, 정적, 말의 속도까지 철저히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판에서는 긴 침묵이나 느린 호흡이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사용되지만, 더빙판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템포가 빠르게 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장면의 분위기나 몰입도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지브리는 ‘말하지 않는 감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감정은 굳이 대사로 표현하지 않고, 숨소리나 침묵, 배경음으로 전달합니다. 이를 살리기 위해선 성우가 감정을 '과잉 연기'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일반 성우보다 배우 출신들이 잘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 더빙판에서는 크리스찬 베일, 빌리 크루덥, 애너 패퀸 등 유명 배우들이 성우를 맡았지만, 원작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로 연기한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템포와 감정의 높낮이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며, 원작 팬들 사이에서는 “역시 일본어판이 진짜 지브리 감성이다”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처럼 지브리 성우의 연기 스타일은 단순한 음성 전달을 넘어, 영화 전체의 감정선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성우 캐스팅은 단순한 연기력이 아닌, 인물과의 조화, 감정의 리듬, 자연스러운 표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철학과 디렉팅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 과정은 지브리 애니메이션만의 감성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로인해 앞으로도 지브리의 목소리는 관객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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