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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와 히사이시 조의 공생관계 (감정, 스토리텔링, 히사이시조)

by 냥자두 2025. 8. 1.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 관련 사진

스튜디오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는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 파트너십으로 평가받습니다. 지브리의 섬세한 이야기와 세계관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통해 감정의 결을 더하고, 히사이시 조의 멜로디는 지브리의 영상에 영혼을 불어넣습니다. 본 글에서는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의 관계가 단순한 작곡가-제작사 협업을 넘어 ‘공생적 창작관계’로 자리 잡은 이유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정의 정교한 설계

지브리 영화 속 인물들은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캐릭터는 때로 말없이 슬퍼하고, 침묵 속에 분노를 품기도 하며, 눈빛 하나로 복잡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절제된 연출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만나 완성도를 더합니다. 그의 멜로디는 주인공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고,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정서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대표곡 ‘One Summer’s Day’는 별다른 대사 없이도 치히로가 겪는 불안, 외로움, 그리고 성장의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합니다.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은 아이의 내면처럼 단순하지만, 뒤로 갈수록 쌓이는 스트링은 치히로의 감정이 차츰 성숙해지는 과정을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지브리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관객은 음악을 통해 캐릭터와 교감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 역시 하울과 소피의 관계 변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말보다 멜로디가 더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 이처럼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감정 묘사의 중심축이자, 지브리 영화의 핵심 언어입니다. 지브리의 연출이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 대신, 히사이시 조는 그 공백을 정밀하게 채웁니다. 그 결과, 음악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장치’로 자리매김하며, 지브리만의 정서적 깊이를 완성합니다.

음악의 스토리텔링

히사이시 조와 지브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리듬과 흐름을 중시하는 서사”에 있습니다. 지브리 영화는 기승전결보다는 ‘흘러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히사이시 조의 음악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라 구성됩니다. 그는 미리 완성된 영상에 곡을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와 감정 곡선을 이해한 후 그에 맞춰 음악을 설계합니다. 예를 들어 《바람이 분다》에서 히사이시 조는 스토리의 절정이 아닌 ‘사이사이의 여백’을 중심으로 작곡합니다. 이는 단순히 드라마틱한 장면에 힘을 주기보다, 인물의 사소한 감정의 흐름까지도 음악으로 붙잡겠다는 철학의 표현입니다. 그 결과,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상과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하나의 교향곡처럼 구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원령공주》의 경우, 격렬한 전투 장면에서도 배경음악이 오히려 느릿하게 흐르며, ‘자연의 분노’를 표현합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는 극적인 장면일수록 음악이 빠르게 전개되지만,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는 반대로 감정을 눌러 담는 방식을 취해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이렇듯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단순히 감정을 덧붙이는 기능을 넘어, 지브리의 스토리텔링 구조 자체와 맞물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 바로 이것이 두 창작자 간의 공생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히사이시조의 음악

히사이시 조는 “음악은 시각보다 더 느리게 움직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의 작곡 스타일과 지브리의 연출 철학이 맞닿아 있는 지점을 잘 보여줍니다. 지브리는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보다는 인물의 감정, 풍경의 변화, 시간의 흐름을 중시하며, 히사이시 조는 이를 반영한 느긋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로 그 미학을 시각화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벼랑 위의 포뇨》의 테마곡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선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야말로 어린아이의 세계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이며, 영화의 리듬과도 완벽히 어우러집니다. 이는 히사이시 조가 단순함 속에서 감정의 폭을 넓히는 ‘음악적 여백’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의 음악은 ‘끝나지 않는 여운’을 남깁니다. 대부분의 곡은 끝에서 멜로디를 갑작스레 끊기보다는 점점 작아지며 마무리되는데, 이는 지브리 영화가 주는 여운과 같은 방향을 지향합니다.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관객은 음악을 통해 영화 속 여정을 정리하고 감정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지브리와 히사이시 조는 음악을 통해 ‘침묵의 순간’마저도 의미 있게 만듭니다. 이는 빠르고 화려한 전개에 익숙한 대중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잔잔한 감동이 피어납니다. 이처럼 두 예술가는 ‘소리의 간격’과 ‘감정의 완급’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며, 단순한 OST를 넘어선 음악미학을 완성해냅니다.

히사이시 조와 지브리 스튜디오는 단순한 협업 관계를 넘어, 서로의 세계를 완성하는 동반자입니다. 감정은 음악으로 흐르고, 음악은 이야기를 이끌며, 그 결과 우리는 하나의 ‘예술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든 작품을 다시 감상할 때, 음악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말 없는 감정과 서사가 그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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